2020-08-17

타인에 대한 올바른 태도

잘 나가고 있던 집권당의 그것도 유력한 당권주자들이 연거푸 이성에 대한 위법한 행위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내 눈으로는 전혀 아니지만 스스로 진보적이고 청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 정당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이럴진데 매스컴에 나오지 않는다고 저 정체도 모르는 이상한 놈들이 모여 있는 붉은자주색 정당이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건 그 당의 추종자들만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정체도 모른다는 건 '사유재산 행사의 자유'와 일반이 나누어 가져야 할 공공성이 가장 중요한 주택의 '소유'가 아닌 '주거'의 개념도 분간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 하나입니다. 둘? 아니 정말 간결한 것은 스스로 보수라고 내어놓고 말하는(실은 수구에 불과한 건데) 그 당을 민주당보다 더 왼편에 놓고자 하는 비대위원이 있고, 전혀 동의할 수 없는 그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는 거의 사이코같은 이들의 정당이니 이 정도의 표현은 젊잖은 것입니다. 이것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고 흔히 표현하는 '기성세대'의 남자들이, 그것도 운동권(그들이 몸담을 때 제일 중요한 태도는 깨끗함이었던)을 거쳐온 사람들이 그런 대중의 동의를 얻기는 커녕 비난을 들을 행동을 했다는 것을 교육자의 눈으로 보려는 것입니다. 교사들, 그 중에서도 남교사들이 학생들이 하는 말 중 제일 싫어하는 것이 '왜요?'입니다. 무식한데 유식한 체하는 교사들은 그렇게 묻는 학생들에게 '왜요'란 한자로 '일본 이불'인데 그게 어떻다는 거냐고 되물으며 힘을 주어 쥐어박을 정도로 듣기 싫어 합니다. 여기에는 많이 고민해야 하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과거 내가 어린 시절에는 어른도 그랬지만 교사들이 내린 지시에 시행햐 하는 이유를 묻는 학생들에게 '말 많은 놈은 다 공산당이야'라며 두들겨 맞았습니다. 이것은 해방 이후 친일파들이 자신들의 지난 과오를 덮기 위해 미군을 등에 엎고 당시 세상평등을 가져 오기 위해 사회주의로 무장한 독립운동 세력들이 people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을 뒤덮기 위해 새로이 만들어 낸 혐오의 말 '빨갱이' 사냥을 하면서 자신들의 권리를 찾으려 대드는 이들에게 몽둥이와 고문, 그리고 생명박탈을 하며 했던 말이었습니다. 그것을 어른들과 교사들이 그대로 배워 아이들과 학생들에게 그대로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행위들(왜요와 공산당)은 학생들이 그 지시를 왜 따라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효울성을 앞세워 무력으로 억지로 가르치려 한 것이었습니다. 그 교사들이 그랬고 그들에게 최소한의 '민주'가 무엇인지 '자유'가 무엇인지 제대로 배우지 못한 선배들, 내 또래들이 군대까지 거치며 윗 세대에게 배운 것을 그대로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에게 강요해온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현장에서 여전합니다. 군대에 다녀온 남자들은 어김없이 그렇게 합니다. 다녀오지 않은 남자들은 감추기 위해 더 독하게 하구요. 여교사라고 다를 것도 없습니다. 윽박질러 빠르게 원하는 결과(질서)를 얻기 위해 이 수단을 유용하게 써왔는데 세상이 달라진 것입니다. 학생들의 인권이 화두에 오른 게 아니라 법적으로 보장이 된 것입니다. 보통은 다중이 원해서 법규를 바꾸게 되는데 이건 '올바른 교육을 위해' 학생들을 훈육해왔던 교사들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도 아니고 위법자가 되는 것입니다. 툭하면 남자중학교에는 경찰차가 들어와 교사들을 심문하고 갑니다. 그나마 일의 당사자들이 촉법자를 면하는 것은 경찰들이 아직 그 법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있어서입니다. 이렇게 되면서 교사들은 집단적으로 학생들의 인권에 대해 자신들의 권리를 위축시키는 적대적인 대상으로 보게 됩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속적이고 전문적인 상담을 통해 변화시키려는 어떤 시스템과 교사에 대한 교육도 없이 지켜야 하는 법규만 교사들에게 주고 지켜야 한다고 강요하면서 당연히 생기게 된 현실입니다. 학생들에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이해를 시키며 가르쳐야 했던 일이었고 교사들에게도 인권이 무엇인지, 학생의 인권이 무엇인지, 상담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부터 교사를 수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사무와 학생 생활지도의 부담을 선행적으로 덜어내야 하는 것이 먼저 있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성폭력에 대한 것도 동일한 차원의 것입니다. 사회적인 합의가 없이 무슨 수학도 아닌데 연역법처럼 응당 사람이라면 해야 하는 바른 행동으로 규범을 제시하고 그에 따르도록 강요하는 환경이 된 것입니다. 내내 회식문회가 성했고 나이든 선배들은 젊은 여성과 젊은 남성이 술을 따르도록 하고 이차로 노래방까지 그런 분위기가 이어졌던 게 몸에 밴 이들이 갑자기 강요된 법에 대드는 것은 예견된 일이어야 했습니다. 지금은 젊은 세대들이 선배들을 기피하면서 회식문화 자체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수요일마다 친목운동(즈로 배구)도 없어지고. 이런 개별문화가 나쁜 것 아니지만 문제는 협력을 통한 더 나은 교육활동이 아예 막혀 있다는 것입니다. 전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니고 지금이라도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현실에 맞게 해당자들에게 섬세한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법규문을 읽는 형식적인 연수를 하는 건 더 거부감만을 키우게 되고 법을 위반하지 않기 위해 아예 말조차 섞지 않는 그런 분위기가 더 이상 번져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기피가 넘어 혐오의 대상으로 보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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