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25일 화요일

번개

태풍 바비가 온다고 하던 중 어젯밤 산책 나갔다 들어 오는데 번개가 치는데 장관이었습니다.
관사에 가려져 피해 나와서 바닷가에서 찍었습니다. 깜빡거리는 불빛은 화태 대교이고 앞을 가리고 있는 산은 화태입니다. 방향으로 봐서 번개는 금오도 방향입니다. 소리가 아주 약한 것을 보면 금오도는 아니고 훨씬 먼 곳에 떨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도를 검색해 보니 그 방향으로는 금오도 넘어 안도, 그리고 연도 뿐이네요.

행복

행복을 원하는 게 아니라는 글을 전에 썼습니다. 최소한 한반도의 남쪽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고 자신의 삶의 목표를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런데 '행복하게 사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어떻게 답할까요. 대부분 물질적으로 불편하지 않는 소비생활과 마음의 평온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이렇게 간추려 이야기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이야기를 듣고 정리해보면 그렇게 정리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물질의 문제는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에 의해 만족하는 상황이 가능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기본적인 조건이 주어졌다고 합시다. 전원생활을 꿈꾸며 자리한 사람들은 벌레와 풀과 흙먼지를 해결해 줄 일하는 사람을 고용해야 할 것이며 그게 해결되고 나면 장보고 음식조리하는 사람이 필요할 것이며 내 건강을 관리해주는 의사가 필요해질 것이고 비가 와도 운동하거나 놀거나 산책할 수 있는 강당이 필요할 것입니다. 물리적인 욕심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당장 필요한 조건은 그리 크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주어진 다음에 단계적으로 지속적으로 더 필요한 것들이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심리적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마음의 평정을 가지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인데 그걸 바란다는 자체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내 평정심을 건드리니 이혼하고 난 뒤에 부족함을 메꾸기 위해 여자친구(기옥력이 부족하면 아내가 될)을 필요로 할 것이고 사로 사귄 그가 앞의 아내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을 전혀 돌아보지 못하는 사람의 행동일 것이기에. 어떤 경우의 행복이거나 그것을 깊이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행복이라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랑이나 행복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색즉시공이며 피안에 이르려면 버려야만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갖고자 한다면 위의 예에서 생각할 수 있듯이 자신의 행복이 타인의 행복을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는 점은 반드시 정제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을 불행하게 하는 행복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020년 8월 24일 월요일

도시락

지금은 도시락의 개념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쓰는 사람이 있더라도 예전에 학교 다닐 때의 그 도시락은 아닌 것이구요. 그 때의 도시락을 볼 수 없었는데 얼마 전 한 카페에서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썼던 것은 그 도시락 나오기 전의 것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직육면체 양은 그릇에 노락 물을 입힌 것이었고 이건 모양도 세련되었고 색깔도 흰색으로 입힌 것입니다.

도로원표

전에도 이야기한 바 있는데 도로원표 이야기를 추가로 합니다. 각 지역간 거리를 정하기 위해 각 지역의 상징적인 장소에 도로 원표를 설치하고 그 지점이 그 지역의 거리측정의 기점(종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보니까 그 자리에 삼각대 위에 어떤 장비가 얹혀 있는 겁니다. 며칠간 계속 있었는데 아마 인공위성과 GPS를 통해 위치를 정치시키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2020년 8월 19일 수요일

배구 놀이

원바운드 하나만 허용합니다. 해보지 않은 모르는 사람들은 손으로 하는 운동이니까 배구가 쉬운 운동인 줄 알지만 막상 해보면 배드민턴보다 어려운 운동이란 걸 알게 됩니다. 배구를 가르칠 때도 그걸 염두에 두지 않은 교사들은 학생들이 배구를 싫어하게 만들어 버립니다.배우는 데엔 단계가 있습니다. 그 단계를 잘 만들어주고 가르치는 게 능력입니다. 그 첫번째는 당연히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수학공부와는 다릅니다. 요새 수학교육을 모르는 사람들이 수학공부를 재미있게 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초등학교에 한하는 것이고 중학교 이후는 통하지 않습니다. 배구의 재미는 캐치볼과 더블컨택을 무시하고 원바운드를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재미있어 합니다. 그 다음 단계는 원바운드를 하나만 허용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편은 바운드 하지 말자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원래의 배구 경기가 됩니다. 그 때부터 터치넷, 캐치볼, 더블컨택을 하나씩 가르쳐 가면 되는 것입니다. 여긴 학생 수도 적을 뿐더러 3학년 아이들이 운동하러 나오지 않아서 몸이 불편한 한 아이를 뺀1, 2학년 10명이 하는데 남녀 대결로 합니다. 그러다 보니 원바운드 하나씩 허용하는 정도로 하고 있습니다. 그제 개학해서 첫시간인 2학년 아이들이 6교시에 놀자고 교무실 복도에서 시위를 해서 져주었습니다. 농구 10분 하고 배구로. 몸이 불편한 아이가 찍어 주기로 하고.

2020년 8월 16일 일요일

타인에 대한 올바른 태도

잘 나가고 있던 집권당의 그것도 유력한 당권주자들이 연거푸 이성에 대한 위법한 행위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내 눈으로는 전혀 아니지만 스스로 진보적이고 청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 정당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이럴진데 매스컴에 나오지 않는다고 저 정체도 모르는 이상한 놈들이 모여 있는 붉은자주색 정당이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건 그 당의 추종자들만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정체도 모른다는 건 '사유재산 행사의 자유'와 일반이 나누어 가져야 할 공공성이 가장 중요한 주택의 '소유'가 아닌 '주거'의 개념도 분간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 하나입니다. 둘? 아니 정말 간결한 것은 스스로 보수라고 내어놓고 말하는(실은 수구에 불과한 건데) 그 당을 민주당보다 더 왼편에 놓고자 하는 비대위원이 있고, 전혀 동의할 수 없는 그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는 거의 사이코같은 이들의 정당이니 이 정도의 표현은 젊잖은 것입니다. 이것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고 흔히 표현하는 '기성세대'의 남자들이, 그것도 운동권(그들이 몸담을 때 제일 중요한 태도는 깨끗함이었던)을 거쳐온 사람들이 그런 대중의 동의를 얻기는 커녕 비난을 들을 행동을 했다는 것을 교육자의 눈으로 보려는 것입니다. 교사들, 그 중에서도 남교사들이 학생들이 하는 말 중 제일 싫어하는 것이 '왜요?'입니다. 무식한데 유식한 체하는 교사들은 그렇게 묻는 학생들에게 '왜요'란 한자로 '일본 이불'인데 그게 어떻다는 거냐고 되물으며 힘을 주어 쥐어박을 정도로 듣기 싫어 합니다. 여기에는 많이 고민해야 하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과거 내가 어린 시절에는 어른도 그랬지만 교사들이 내린 지시에 시행햐 하는 이유를 묻는 학생들에게 '말 많은 놈은 다 공산당이야'라며 두들겨 맞았습니다. 이것은 해방 이후 친일파들이 자신들의 지난 과오를 덮기 위해 미군을 등에 엎고 당시 세상평등을 가져 오기 위해 사회주의로 무장한 독립운동 세력들이 people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을 뒤덮기 위해 새로이 만들어 낸 혐오의 말 '빨갱이' 사냥을 하면서 자신들의 권리를 찾으려 대드는 이들에게 몽둥이와 고문, 그리고 생명박탈을 하며 했던 말이었습니다. 그것을 어른들과 교사들이 그대로 배워 아이들과 학생들에게 그대로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행위들(왜요와 공산당)은 학생들이 그 지시를 왜 따라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효울성을 앞세워 무력으로 억지로 가르치려 한 것이었습니다. 그 교사들이 그랬고 그들에게 최소한의 '민주'가 무엇인지 '자유'가 무엇인지 제대로 배우지 못한 선배들, 내 또래들이 군대까지 거치며 윗 세대에게 배운 것을 그대로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에게 강요해온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현장에서 여전합니다. 군대에 다녀온 남자들은 어김없이 그렇게 합니다. 다녀오지 않은 남자들은 감추기 위해 더 독하게 하구요. 여교사라고 다를 것도 없습니다. 윽박질러 빠르게 원하는 결과(질서)를 얻기 위해 이 수단을 유용하게 써왔는데 세상이 달라진 것입니다. 학생들의 인권이 화두에 오른 게 아니라 법적으로 보장이 된 것입니다. 보통은 다중이 원해서 법규를 바꾸게 되는데 이건 '올바른 교육을 위해' 학생들을 훈육해왔던 교사들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도 아니고 위법자가 되는 것입니다. 툭하면 남자중학교에는 경찰차가 들어와 교사들을 심문하고 갑니다. 그나마 일의 당사자들이 촉법자를 면하는 것은 경찰들이 아직 그 법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있어서입니다. 이렇게 되면서 교사들은 집단적으로 학생들의 인권에 대해 자신들의 권리를 위축시키는 적대적인 대상으로 보게 됩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속적이고 전문적인 상담을 통해 변화시키려는 어떤 시스템과 교사에 대한 교육도 없이 지켜야 하는 법규만 교사들에게 주고 지켜야 한다고 강요하면서 당연히 생기게 된 현실입니다. 학생들에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이해를 시키며 가르쳐야 했던 일이었고 교사들에게도 인권이 무엇인지, 학생의 인권이 무엇인지, 상담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부터 교사를 수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사무와 학생 생활지도의 부담을 선행적으로 덜어내야 하는 것이 먼저 있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성폭력에 대한 것도 동일한 차원의 것입니다. 사회적인 합의가 없이 무슨 수학도 아닌데 연역법처럼 응당 사람이라면 해야 하는 바른 행동으로 규범을 제시하고 그에 따르도록 강요하는 환경이 된 것입니다. 내내 회식문회가 성했고 나이든 선배들은 젊은 여성과 젊은 남성이 술을 따르도록 하고 이차로 노래방까지 그런 분위기가 이어졌던 게 몸에 밴 이들이 갑자기 강요된 법에 대드는 것은 예견된 일이어야 했습니다. 지금은 젊은 세대들이 선배들을 기피하면서 회식문화 자체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수요일마다 친목운동(즈로 배구)도 없어지고. 이런 개별문화가 나쁜 것 아니지만 문제는 협력을 통한 더 나은 교육활동이 아예 막혀 있다는 것입니다. 전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니고 지금이라도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현실에 맞게 해당자들에게 섬세한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법규문을 읽는 형식적인 연수를 하는 건 더 거부감만을 키우게 되고 법을 위반하지 않기 위해 아예 말조차 섞지 않는 그런 분위기가 더 이상 번져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기피가 넘어 혐오의 대상으로 보지 않도록.

지금 핀 꽃

    꽃이 두 가지 입니다. 잎사귀 넓은 건 이야기 하려는 게 아닌 말똥풀이고 꽃은 꽃잎이 많은 게 민들레, 가지런하게 한 줄만 있는 게 좀씀바귀입니다. 쪼꼬만 게 화단에 많이 피어 있어 궁금해서 찾아보니 씀바귀와 같은 모양인데 아주 작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