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28일 화요일

새로운 시작

  삶에서 연속성은 안정감을 줍니다. 무얼 하려거나 어딜 갔는데 지금까지 항상 그랬던 상황이 아닌 거 기다리고 있다면 당황을 넘어 불편함까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과 연결된 상황을 바꾸려 하지 않지요. 웬만하면 사무도 하던 거 하려 하고, 자리가 바뀌게 되면 컴터도 가지고 가지요. 심한 건 결혼한 짝이나 사귀고 있는 사람이 함께 지내기에 부적합하다는 것을 확신하는 상황에서도 '그만 만나'를 하지 못합니다.

  짧은 시간에 혼자를 선택했고, 정년 2년 남기고 명예퇴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했던 37년을 살았던 여수를 떠나 순천으로 집을 옮깁니다. 지금까지 하지 않았거나 못했던 것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고 여수란 곳이 좋은 추억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많은 곳이라서 시도해 보는 일입니다. 방이 아닌 집이 필요하기도 했고. 특별한 기대는 없습니다. 거기에서도 도서관과 운동할 수 있는 곳만 있으면 됩니다.

2023년 2월 13일 월요일

작은 것을 뜻하는 접두어

   식물 이름을 공부하다 보니 작은 것을 뜻하는 접두어가 다양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개 - 개나리

너도 - 너도바람꽃, 너도골무꽃, 너도밤나무

나도 - 나도감나무

돌 - 돌배, 돌조개

앵 - 앵두나무(앵도였음. 작은 복숭아)

조 - 조, 조랑말, 조팝나무

작 - 잔디(작은 띠 종류의 풀), 잔대(자잘한 대가 올라온다는 뜻)

애기 - 애기붓곷, 애기현호색, 애기단풍

졸 - 졸참나무

2023년 2월 8일 수요일

시간

  사람들은 자신은 합리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뉴튼 과학이 양자역학에게 물려주듯이 철학만이 아니라 과학조차도 옳고 그름이 바뀝니다. 과학적이라고 말하면 그건 사실이 되는 그 '과학'마저도. 그럴진데 자신의 생각이 과학적이니 객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건 이미 오만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차가운 머리가 아니라 뜨거운 가슴으로 생각하라'고 말을 하면서도요.

   시간은 실체일까요 관념일까요. 이것도 아주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과거의 쟁쟁한 철학자뿐 아니라 최근의 유명한 양자역학 과학자인 파인만도 명확하게 정의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건 따지지 말지요. 다만 시간이 연속적인지 아닌지의 이야기가 앞 문단과 연결된 이야기입니다. 다들 시간은 연속적이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이것도 대부분의 사람은 실제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매 해의 끝무렵 그 해가 끝난다고 연말이라고 하고 행사를 치르고 매 해의 시작은 새해가 시작된다고 또한 행사를 치릅니다. 옛날 사람들, 선사시대의 사람들은 시간은 반복된다고 생각했답니다. 그 생각이 지금까지 실제를 지배하고 있는 거지요.

2023년 2월 6일 월요일

마무리

 1년 일햇던 것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서류들은 행정실로 이관했고 수행평가 보았던 것들을 문서파쇄기에 넣을까 했는데 너무 소모적인 것 같아서 이름 부분만 떼어내고 일반쓰레기로 버렸습니다. 다 정리한 것 같습니다. 이제 빠뜨린 것 없는지만 체크하면 됩니다.



2023년 2월 1일 수요일

이웃

 


  사진부터 게시한 것은 이 글을 읽는 분께서는 이 사진에서 내가 무얼 말하려고 하는지 맞추어 보라는 뜻입니다. 두 가지를 말하고자 하는데 실은 이전에 비슷한 걸 이야기 한 적이 있을 것 같지만 항상 글을 쓰며 느끼는 건 생각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바뀌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느꼈고 스스로 그것을 확인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또 쓰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거처를 옮기고 조심스럽게 다닌다고 하니까 누가 이유를 물어서 지역 주민들은 원룸에 사는 사람을 이웃보다 불안한 존재로 인식한다고 말하니까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이 지역은 원래 깡촌이었는데 개발하면서 보상받고 나간 사람들도 있고 집을 새로 짓고 사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이 볼 때는 원룸 거주자들을 거의 잠재적인 범죄집단? 거기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자신들을 불편하게 만들 사람들로 보는 것입니다.

  보통 마을에 경고문이 붙은 건 묘지를 쓰지 말라는 것 정도인데 여긴 이런 경고문이 여러 군데 세워져 있습니다. 대놓고 자신의 집 담장에. 일단은 구획을 지었고(우리와 남) 거기에 자신의 바운더리 밖의 사람들은 그냥 다른 집단이 아니라 기피하고 배제해야 할 존재로 가치 매김을 한 것입니다. 그냥 '우리'가 작동한 것이 아니라 우리 밖의 존재에 '혐오'라는 가치를 입힌 것이지요.

  또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세상은 나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생활을 할 때 그것을 내가 생각하는 대로 보아주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선한 시민으로 산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사람들에게 다른 시선으로 보일 수도 있고 실제로 자신만 그렇게 산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구요.

  너무 비관적으로 세상을 본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바로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입니다, 오전에 뒷산을 한바퀴 도는데 3분의 1의 사람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소리를 틀고 다니고 있으며 10분에 한 사람 정도를 길의 오른쪽을 가는 나와 대치합니다. 아주 흔한 예를 든 것입니다. 인도로 산책을 할 때도 계속적으로 그런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운전을 할 때도 그렇습니다. 나는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군대의 피해자는 있어도 가해자는 없는 이치가 거기에 있다는 걸 인정하는 사람만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사대부士大夫

   남자, 교육 받은 남자, 예의 바른 남자, 지조 있는 남자, 뿌리 있는 남자. 이 정도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대부 이겠지요?원래 중국에서 쓰던 의미와 조선에서 달라졌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의하면 '고려, 조선 시대 문관 관료의 총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