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23

혼인의 역사

   중국 소설을 읽으면서 새로이 알게 된 것이 혼인 제도 혹은 풍습입니다. 북송 시대 기반인 서녀명란전에서 보면 적실 1명, 측실 3명, 첩 여러 명을 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측실과 첩을 구분하고 있으며 주인은 하녀(비婢)를 취하는 게 하등의 문제가 없었고 대신 관계한 비는 주인이 다른 비와 달리 대우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반도는 어땠는지 궁금했습니다.

  삼국시대의 신라는 다처제를 귀족 중심으로 하였고 고려에서도 유지 되었다고 합니다. 다처제가 있었고 축첩제도 있었답니다. 송나라와 비슷하게 '처'를 여러 명 두고 '처'와 다른 신분의 '첩'을 또 여러 명 두엇다는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대명률에 따라 적처는 한 명으로 하고 처가 죽어 개취한 경우는 후처를 선처와 마찬가지로 대우하였고 그 외의 다른 '처'는 모두 '첩'의 신분으로 하락시켰습니다. 태종이 중혼금지를 했지만 완전히 다처제가 사라진 건 중종 때부터 였다고 합니다.

  홍길동전을 통해 '서얼' 혹은 서자라는 걸 알게 되는데 서자庶子는 양반과 양민 여자 사이에서 나온 자식, 얼자孼子는 양반과 천민 여자 사이에서 나온 자식을 말합니다. 조선 초기부터 이들에 대한 차별이 있었고 경국대전에 서얼금고법庶孼禁錮法이 명시되어 관료로 진출하는 것을 법으로 막아 차별을 두었습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들여다 볼수록 참으로 좋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나라였습니다.

2026-02-16

오공蜈蚣

   손오공의 오공이 아닙니다. 소설을 읽다 '오공랑'이라는 말이 나와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소설에서는 싸워서 지게 되면 이길 때까지 계속 상대를 찾아가서 싸움을 벌여 상대가 지쳐서 항복을 선언할 때까지 싸우며 발이 아주 빨라서 붙여진 별명이라고 했습니다. 다치고 나서 움직이기 힘들어 집에 있던 황석영의 장길산을 보면서 찾은 것입니다. 오공랑.

  오蜈공蚣인데 '오'도 뜻이 '지네', '공'도 '지네'로 사람들에 아주 밀접한 것이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과 밀접할 수록 뜻하는 글자가 많거든요. 집을 뜻하는 것이 궁, 전, 각, 헌 등 어 높은 데 사는 사람들의 것도 많고 우리 네가 사는 것도 가, 실, 옥, 사 등 꽤 많습니다. 아마 여기 소개한 것의 개수 이상으로 더 있다고 해도 될 것입니다. 이 뿐 아니라 돼지도 그렇습니다. 돈, 저, 시, 체 등입니다. 지네는 산아래 낮은 층 수에 살면 피하기 어려운 고약한 벌레입니다.

글쓰기의 책임

   엊그제 칼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읽든 상관없이 나는 내 글이 사실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글을 쓰는 자세에 도움을 받기 위해 말글쓰기를 하는 칼럼은 빠지지 않고 들여다 보려고 합니다. 최고로 치는 사람이 김진해 교수입니다. 한겨레신문에 매주 기고합니다. 단순히 사전적인 것만 다루는 게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항상 고민하며 글을 써서 나이 불문 존경합니다. 그런데 엊그제 칼럼. 경향신문도 우리말에 대한 칼럼이 실리는데 엊그제 귀성歸省에 대한 것이 실렸는데 한자공부하는 사람이니 이상했습니다. 少를 '작을 소'라고 했고 '작을소少+눈목目)이니 잘 보려면 눈을 게슴츠레 작게 뜨는 법이니 집을 떠나 있다가 명절에 집으로 돌아와 꼼꼼히 잘 살피려는 것이라고 해석을 한 것입니다. 

  먼저 거슬린 게 '적을 소'를 '작을 소'로 잘못 쓴 것이었는데 둘이 다른 뜻이라는 것도 모르는 것이어서 '잘 살핀다'고 말하기 위해서 바꾸어 쓴 것으로 보여 또 못마땅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공부해야지요. 오늘 어원을 살펴 보았습니다.


  歸는 별 살필 일이 없습니다. 省이 어떤 글자인지가 핵심입니다. 위의 모양이 갑골문의 省입니다. 아래 부분이 눈目인 것은 확실하고 윗부분을 보면 중심선의 좌우로 가지선이 나와 있습니다. 좌우로 살피는 것을 말합니다. 어원사전에서는 자세히 보지 않고(少) 대충 살핌(目)을 말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칼럼과는 아주 다릅니다. 사전에서는 귀성을 '부모를 뵙기 위하여 객지에서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옴'으로 말합니다.省이 '부모님 안녕하신지를 살피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오래 된 게 아니라 해방 이후 생겨난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왜 '살필 성'을 썼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왕 나온 김에 省을 공부하자면. 이건 지방 행정단위이기도 합니다. 저장성浙江省(절강성), 윈난성雲南省(운남성), 산둥성山東省(산동성) 등. 그런데 행정 기관명이기도 합니다. 국방성國防省(미국), 문부성文部省(일본), 중서성中書省(고려)등. 중국의 행정구역이름의 '성'이 '城'일 줄 알았는데 공부하길 잘 했습니다. 또한 이 글자는 '생'으로도 읽힙니다. 생략省略입니다.

상인과 샌님

   상인은 장사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으로 별 다른 듯이 없는데 샌님은 조금의 언급이 필요합니다. 조선 시대 때 생원을 부르던 말이 지금은 뜻이 달라졌다고 하는데 지금 샌님으로 쓰이고 있는 건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두 번째로 말하는 '얌전하고 고루한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입니다. 거의 멸칭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지요.

  상인의 덕목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는 것입니다. 한 예로 금융이라는 게 산업의 일 부분이 된 것은 산업화 이후입니다. 그 전에는 돈을 꾸어 주고 이자를 받는 건 동서양 막론하고 비도덕적인, 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산업이 1차 산업에서 2차 산업으로 산업혁명에 의해 중심이 이동하면서 가장 중요한 산업이 되었습니다. 미국을 기준으로 한다면 '산업의 중심지'는 '금융의 중심지'와 동일하며 그 곳은 뉴욕인 것입니다.

  또 한 예로 반도체를 들 수 있는데 미국에서 반도체의 기술이 꽃을 피면서 자신들의 기술을 일본에 이전시키고 자신들은 새로운 시장 개척을 하였습니다. 일본을 새로운 반도체라는 엄청난 금맥에 가까운 기술을 개발에 필요한 자본 투여 없이 미국으로부터 고스란히 이전을 받아 전자제품을 만들며 엄청난 이익을 보게 되었습니다. 워크맨 등으로 돈을 긁어 모으며 하늘 모르고 부와 자존심이 올라가던 때 소니 회장이 현재의 융성함이 미국 때문이라는 것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쌓아 올린 업적이라는 의미의 기자회견을 한 뒤 미국은 일본에 더 이상의 기술을 지원하지 않고 한국으로 지원을 돌립니다. 이 시기가 트랜지스터에서 IC회로(집적회로)로 반도체의 혁신이 이루어 지던 시기였습니다. 한국은 새로운 기술을 통하여 전자제품과 휴대전화에서 기존의 방식을 완전히 벗어나는 새로운 전자제품의 시대를 열었고 일본은 소니를 중심으로 현재까지의 기술로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시도를 했습니다. 일본과 일본 기업이 그런 변화에 적응하지 않고 기존을 고집한 것이 큰 잘못이었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변화에 따라가려고 생각하고 행동에 옮긴 게 작년, 2025년부터 였습니다.

  상인의 덕목은 변화를 미리 읽어 내고 더 나아가 그것을 선도하는 데에 재화를 더 벌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비록 개인적인 욕심으로 자동차 산업에 끼어 들었다가 망하고 대한민국 경제마저 외환위기로 몰아넣었던 이건희도 그것 빼고는 장사를 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위기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어'야 한다며 삼성을 새 방향으로 이끌었고 반도체에서 선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대한민국 코스피의 상승과 하강을 주도하는 위치를 가진 기업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변화는 다시 말하지만 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덕목'입니다.

  샌님은 보수주의자가 가져야 하는 것과 같은 덕목을 가집니다. 과거의 가치를 붙들고 머리 위로 치켜 올려 받드는 것입니다. 과거에 이런 일이 있을 때 그 때 이렇게 해서 나빴고 이렇게 했을 때 좋았으니 지금 같은 일이 일어났으니 그 과거의 전범에 따라 이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 결정이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도 고스란히 그 책임을 지고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에 그런 보수주의자는 없지만요.

  상인이 돈을 벌면 세상과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돈이 제일 중요한 가치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지키면서 돈을 벌었다는 것은 지나가던 소도 웃을 거짓입니다. 딱 정의로운 이익을 붙여 팔고 세금을 제대로 내면서 자본주의 세상, 그것도 부패한 이 땅의 자본주의에서 성공했다는 것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과이지만 이 것은 가능성 0.00001%가 아니라 그냥 0입니다. 내가 돈을 버니 허리 숙여 가며 침대 팔아 번 돈보다 내 아이가 서울에서 집을 사면서 단기간에 집값 올라가 번 돈이 손도 안대고 코를 푸는 엄청난 이익을 가져온 것이 미치지 못하니 내 아이의 축재 능력이 뛰어난 것, 자랑스럽고 내가 잘 키운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걸 '집이란 게 거주의 수단이어야 하고 축재의 수단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친구의 말은 '돈도 쥐뿔도 없는 샌님이 배아파 악담하는' 재수없는 말이어서 상종하고 싶지 않게 된 것입니다. 불과 십 여년 전까지만 해도 올바른 가치에 이견이 없었지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건 다시 말하지만 당연한 변화입니다. 단지 자신이 아직도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이 멍청하거나 비열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바르게 살면, 그러니까 어떤 세상에 그런 사람들만 산다면 더 잘 사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가난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는 것에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는 단순한 산술도 못하며 올바를 가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일 것입니다.

2026-02-13

조선이라는 나라

   전에 이야기 한 적 있는데 조선이라는 나라는 고려라는 나라를 거부하고 뒤엎으며 만든 나라입니다. 단지 역성혁명이 아닙니다. 易姓혁명. 나라의 주인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귀족국가였던 걸 관료제의 나라이면서 신하의 권한을 대폭 강화시킨 나라로. 우리 역사선생들이 공부하지 않은 직업인이어서 우리는 두 체제의 차이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고려는 왕에게로 모든 권력이 집중되어 있고 귀족이 세습되어 정권을 보좌하던 사회였고 조선은 왕이 정점에 있었지만 관료는 세습이 아니고 과거를 통해 뽑았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신권 중심으로 가기 위해 '의정부(영의정, 좌의정, 우의정)'라는 기관을 내각인 6부의 위에 두었습니다. 왕이 6부에 직접 명을 내라고 6부의 행정집행 결과를 직접 보고 받는 게 아니라 오르거나 내리는 중간에 의정부를 두어 단순한 절차만에 머무르지 않고 브레이크도 걸고 핸들링도 할 수 있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게 못마땅한 태종 이방원이 그걸 주창하고 의정부 조직을 만들어 시행한 정도전을 제거하고 의정부를 당대에는 폐지한 것입니다.

  말이 길었습니다. 명나라의 건국은 1368년입니다. 조선은 1392년이었구요. 이성계는 요동으로 파견되었다가 위화도 회군을 하면서 내세운 이유 중 하나로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고 했는데 건국연수가 기껏 24년 차이가 날 뿐입니다. 건국하고 아직 정권 안정도 되지 않은 나라를 섬기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런 말로도 성립하지 않는(어불성설) 어거지를 우리는 중국의 속국도 아니면서 그대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명나라는 유학을 숭상했다고 우리는 배웠고 조선을 세운 자들도 그리 믿었습니다. 그랬는지 한 가지만 보겠습니다. 

君之視臣 如土芥 則臣視君 如寇. 임금이 신하를 지푸라기처럼 여기면, 신하는 임금을 원수처럼 여긴다.  맹자.

  주원장이 맹자를 읽다가 위의 글을 읽게 되었고 맹자의 신주를 내치고 그의 책을 모두 불태우라고 합니다. 목숨을 걸고 진언한 사람이 있어 명을 거두긴 했지만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의 유교에 대한 입장을 볼 수 있습니다. 명나라와 유교를 받들어 불교를 숭상한 고려를 엎었던 그 자들의 주장이 옳은 일을 한다고 내걸었던 기치와 부합하나요?

  한반도 역사에서 딱 집어 내어 버려야 할 못된 때가 통일신라로 배운 그 나라와 조선이라는 나라입니다. 세종께는 죄송하지만. 

2026-02-10

한자 공부 실에 관련된 글자

   한자 공부를 하면서 크게 두 가지에 놀랍니다. 하나는 처음 만들었을 때의 뜻과 완전히 달라진 지금의 뜻을 가진 글자이고 또 하나는 기가 막히게 다른 것과 구분되는 지점을 찾아 글자를 만든 것입니다.

  실은 원래 갑골문에 으로 糸'실 멱(가는실 멱)'이었습니다. 실을 제대로 상형문자로 만들었지요? 실의 본질인 꼬아 만든 모양을 본 뜬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글자는 부수로 가 버리고 좀 더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 두 글자를 겹쳐 絲(실 사)로 만든 것입니다. 糸은 단독으로 쓰이지 않고 있습니다.

  관련된 글자가 상桑입니다. 갑골문에는 으로 나무 모양을 그렸는데 금문에서 으로 바뀝니다. 직관적으로 보이는 모습을 그린 것에서 뽕나무에서 얻어지는 누에의 고치에서 나오는 비단을 만들기 위한 인간의 수고로움을 말하기 위해 '가지' 모양 대산 '손'모양으로 바꾼 것으로 보입니다. 손 모양이 나중에 又로 바뀌기 때문에 지금 '뽕나무 상'은 桑으로 씁니다.

  비단을 뜻하는 한자어는 보통 금錦을 쓰지만 백帛이 또 있습니다. 비단에 글씨를 쓴 것을 백서帛書라고 합니다. 글씨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남겨 두기 위해 쓸 뿐 아니라 보관도, 이동도 쉬워야 합니다. 그래서 바위->점토판 등을 거쳐 그 문명의 지역 특성에 따라 파피루스에 쓰거나 대나무에 쓰게 되었습니다. 대나무에 써서 묶어 책으로 만든 것에서 책冊, 전典 등으로 죽간을 두루마리 형태로 묶은 것의 형태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글자들이 있습니다. 백帛은 갑골문에서인데 위는 白(흰 백)으로 소리를, 아래는 巾(수건 건)으로 뜻을 나타내어 이게 부수입니다. 형성자인데 錦과 다른 점은 백은 아직 염색 전의 하얀 천을 말합니다. 백서노자는 발견된 지 얼마 되지 않은데 현재 알려진 노자보다 더 오래 전에 쓰인 것이라 하니 찾아 보아야겠습니다. 천에 쓴 건데 용케 썩지 않고 남아 있네요. 백은 우리 일상에서는 뜻밖에 폐백幣帛에 쓰입니다. 자손 번성하라고 신부의 치마폭에 대추와 밤을 던져 준 것 때문에 쓰이는 걸까요?
  의외의 연결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신紳입니다. 뜻이 '큰 띠'인데 남자의 허리에 두르는 폭이 넓은 띠를 말합니다. 고대에 높은 관직의 남성만 하고 다녔던 것으로 신사紳士라 함은 지방의 권세 있는 집안 사람이나 높은 지위의 관리를 일컬은 말이었다고 합니다.










건강 수명과 통계

   엊그제 연합뉴스에 건강수명에 대한 기사를 보다 뭔가 설익은 냄새가 나는 걸 느꼈습니다. 건강수명에 대한 것이었는데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빈부 격차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22년 기준 69.89세인데 상위 20%는 72.7세이고 하위 20%는 64.3%이며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건강보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라고 합니다.

  구글검색을 해보니 건강나이와 건강수명을 섞어 쓰고 있으며 정의가 다릅니다. 세 가지 생체기준을 세우고 있는데 몸만 가지고 합니다. 그건 버리고, 믿을 수 있는 기관의 건강수명의 기준은 평균수명에서 질병으로 고통받는 시간을 덜어낸 값입니다. 건강보험 데이터 기준이잖아요.

  데이터를 보면 끔찍할 정도로 빈부에 대한 건강 상태가 크게 차이가 납니다. 그 동안 동양5복이라 했던 수, 부, 강녕, 유호덕, 고종명이 서경 홍범편에 나온다는 걸 알게 된 것 하나의 수확이었고 또 하나 중요한 건 통계에 대한 것입니다. 

  첫째는 가난한 자는 오래 살고 부유한 자는 빨리 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가난한 자는 끔찍하고 부유한 자는 좋은 일 아닙니까? 나이가 들면 병원에 가지 않더라도 정신적 신체적 기능이 떨어져 한계를 느끼는 일이 많게 되기 때문에 원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지 못하며 사는 건 행복한 삶이 아니니까요.

  다음은 약간은 앞의 살핌과 연결이 되지만 하위 20%는 아프면 바로 병원에 가는 사람들입니다. 억지주장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가난한 동네의 의원을 가 보면 무슨 말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건강보험의 혜택을 아주 풍족하게 누리는 노인들이 보통의 병원은 열지 않는 8시가 되기도 전에 꽉 차 있습니다. 있는 사람들은 병원을 가야 하는 경우를 스스로 가늠하여 필요한 경우만 간다는 점과 함께 통계의 빈틈을 볼 수 있습니다.

  저런 통계는 왜 냈을까요? 저소득층에 뭐 도움을 주려는 걸까요? 내가 생각하기에는 곳곳에 운동은 되지 않는 스트레칭 가구들만 생색 내지 말고 체육시설들을 날씨에 구애 받지 않고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새로 짓기도 하고 학교와 지자체 체육관도 개방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차탕

   지금 읽고 있는 소설은 약간은 엉성한 것 같지만 재미도 있고 뜻하지 않게 얻는 것도 제법 쏠쏠합니다. 얼마 전에는 차탕茶湯이란 게 나와서 만들어 먹고 싶었습니다. 명나라가 배경이라고 했잖아요. 그들의 차에 대한 사랑은 엄청났습니다. 삼국지연의(한국소설명 삼국지)의 시작도 유비가 어머니께 드릴 차를 사기 위해 가보인 검을 팔러 나가는 것부터 시작하잖아요. 평민 위의 계급이라 하면 항상 바로 마실 수 있는 차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차탕이란 걸 처음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원래의 레시피를 변형하여 만들기로 했습니다. 원래의 차탕은 간식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름만 모티브로 얻어 쓰기로 했습니다. 재료부터 완전히 다릅니다. 茶를 쓰지도 않으면서 그들은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모릅니다.

  오직 약으로 쓰려고 말려 두었기 때문에 두 봉지 뿐이었던 귤피를 훨씬 더 만들었습니다. 자연드림에서 농약을 쓰지 않고 친환경으로 재배했다는 귤을 제법 비싸게 사서 쓴 겁니다. 믿냐구요? 의심하지만 믿습니다. 그래야 내게 농약 먹은 것보다 더 이롭다고 생각하니까. 말릴 때 햇볕 바로 쐬면 변색하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그늘에서 말리거나 직사광이 아닌 데서 말리면 색도 곱고 행도 더 살아있습니다.

  생강도 추가로 더 말렸습니다. 이 두 가지는 감기 기운이 있을 때 함께 다려 먹으면 평소 건강관리를 잘 한 사람이면 이것 만으로도 나쁜 기운을 밀어낼 수 있습니다. 생강은 경험으로 빨리 말려야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말리는 도중 비가 하루만 많이 와도 좋은 게 되지 않더라구요. 좋은 햇볕을 따라 가며 빨리 말리는 것이 좋습니다. 어느 정도? 바삭하게! 약간의 힘만 주어도 부러지게. 부서지면 지나친 상태. 두 가지 다.

  여기에 대추와 계피가 필요한데 두 가지는 사는 게 훨씬 편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내 손으로 재배하지 않은 것은 그냥 믿는 것이 좋습니다. 그냥 잘 씻어 쓰는 것으로 스스로를 안심시키세요. 그리고 차가 필요한데 나는 장이 약해서 녹차가 맞지 않아 숙차를 마시는데 지금은 보이차 뿐이어서 보이차를 썼습니다.

  기준은 물 1리터입니다. 물론 그 만큼의 양이 필요하다는 게 아니고 쉽게 만드는 법을 이야기 하기 위해 정한 양이니 물의 양을 기준으로 다른 재료들의 양을 비례하여 만들면 됩니다.

- 귤피.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재료입니다. 7개. 굳이 부술 필요 없습니다. 끓일 그릇이 작으면 부수어도 되는데 가루가 나오면 끝에 마실 때 어떨 지 짐작 가실 겁니다. 그릇이 크기가 되면 쪼개지 않는 게 좋습니다.

- 생강. 말린 것과 생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약제로 쓰는 것은 모두가 그렇습니다. 귤피도 당연히. 이건 생각의 크기와 편의 두께에 따라 다르니 따기 양을 정하기 어려운데 찻숫가락에 올라갈 만큼. 간장종지 옆에서 볼 때 조금도 보이지 않을 만큼. 7개? 양을 까다롭게 정하는 이유는 요 놈이 맵고 향이 강하기 때문에 차탕의 맛을 지 맘대로 흔들기 때문입니다. 

- 대추. 말린 것의 크기가 약지 끝마디의 크기인 것을 기준으로 아홉 개. 씻어서 칼로 씨를 잘 저며 냅니다. 나는 과일의 씨에는 모두 독이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시면 대추의 껍질은 코팅막이 강력해서 일부 찢어서 스미도록 하여 씨도 쓰시면 됩니다.

- 계피. 향과 맛을 좋습니다만 이것도 양을 조절. 엄지 손톱 두 개의 양. 기르지 않은 손톱으로. 잘 우러 나게 뽀개어 주시면 좋습니다.

- 마지막으로 주인공인 차. 우린 것 맥주잔 2잔. 현재까지의 재료는 모두 따뜻한 성질의 것이고 내가 원하는 게 몸의 원기를 따뜻하게 올려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녹차는 아주 찬 성질입니다. 서로 보해주는 게 아니라 기능을 상쇄시켜 버리니 비싸고 애쓴 보람이 없습니다. 발효차를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음식 만들 때 조리 재료를 넣으면 어떻게 될까를 미리 시뮬레이션 해보는데 녹차 말고 반발효차나 홍차도 써 봄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찻잎을 함께 넣는 것은 하지 말라고 강하게 권합니다. 찻잎에는 알미늄 성분이 있는데 많이 뜨거운 물이나 뜨거운 물에 오래 담그어 놓으면 찻잎 밖으로 우러 나옵니다. 양은 냄비에 음식 조리하고 담아 먹는 효과와 같이 알츠하이머의 원인 물질을 많이 먹게 되기 때문에 피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번거럽더라도 찻물을 따로 우려 내어 차탕을 끓일 때 넣기를 강권합니다.

  생강과 계피의 양은 맛을 본 뒤 추가해도 되겠지요. 아이랑 함께 먹는다면 차의 양을 반으로 줄이는 것이 좋습니다. 발효차가 녹차보다 카페인이 더 강합니다. 기운을 북돋워 주는 맛있고 향이 좋은 차를 드시고 싶으면 꼭 드셔 보시길 바랍니다.


2026-02-09

일출

   용케 봉화산 너머로 떠오르는 해를 잡았습니다. 



초승달

   초승달 예쁘게 찍기 어려운데 그나마 괜찮게 찍혔습니다.



2026-02-08

집家의 의미

   나의 세대는 '나의 집'에 대한 교육은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처음 받은 국어책은 1쪽 '나', 2쪽 '너', 3쪽 '우리', 4쪽 '우리나라 대한민국'으로 기억합니다. 음악 시간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를 배우면서 이해가 되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잉? 배 물리 먹은 일 없고 형제들끼리 작은 것을 두고도 항상 다투고 집안의 가장은 일은 하지 않고 나쁜 분위기만 만들고...

  家는 '집안'을 말하기도 하지만 '문벌'을 말하기도 합니다. 안동 김가, 전주 이가 등이 그것입니다. 또한 전문가 집단을 말하기도 합니다. 예술가, 건축가 등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자는 宀(집 면)+豕(돼지 시)로 되어 있는데 갑골문에서도 그대로 집 아래에 돼지가 있는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항상 그렇듯 아는 체하는 어중이떠중이들은 진짜보다 더 그럴싸한 거짓으로 설명을 합니다. 옛날에 뱀 따위를 막기 위해 집을 땅에서 띄워 짓고 아래에 돼지를 키운 것에서 비롯한다고. 아닙니다. 당시 집을 짓는 건 아주 큰 일이었기 때문에 집을 짓기 전에 집을 지을 터에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희생이 필요하겠지요? 돼지를 많이 썼기 때문에 만들어진 글자입니다. 니 주장만 옳냐고 하겠지요? 동생 부부랑 산책길에 매제가 이건 무슨 나무냐고 묻길래 '애기동백이에요'라고 했더니 '그걸 어떻게 알아요?'라고 하더라구요.

  이 글자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주역에도 있습니다. 37번째 괘가 '풍화가인風火家人 ䷤'이라는 괘입니다. 위의 괘가 손괘☴인데 '바람'을 뜻하고 큰 딸입니다. 아래의 괘는 태극기에도 있는 리괘☲인데 '불'을 뜻하고 둘째 딸입니다. 바람이 아래의 불을 만나는 것이니 집안으로부터 밖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괘사

風火家人 ䷤


家人, 利女貞.


​初九. 閑有家, 悔亡.

六二. 无攸遂, 在中饋, 貞吉.

九三. 家人嗃嗃, 悔厲, 吉, 婦子嘻嘻, 終吝.

六四. 富家, 大吉.

九五. 王假有家, 勿恤, 吉.

上九. 有孚, 威如, 終吉.

  자세한 것은 여기서 필요하지 않고 개략만 이야기 하겠습니다. 웹사이트 뿐 아니라 책에서도 대부분이 엉터리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네가 잘못하는 것이지!'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럴 것입니다. 그러니 석열이 따라 다니고 그가 아니면 동훈이, 아니면 종배나 얼마 전 그만 둔 현정이, 심하게는 어준이 따라 다니고 삼성과 쿠팡을 사는 것입니다.

  괘사는 家人, 利女貞.입니다. 가인이란 건 이 괘를 말합니다. '이 괘는'의 뜻입니다. 利女貞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데서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로운게 어떻게 해야 이롭냐면 '여자가 貞해야 이롭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한자 자전의 뜻대로 '올바르고 정숙해야'로 그러니까 몸가짐을 바로 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주역은 말 그대로 주나라의 역경입니다. 당시의 글자는 지금과 다른 뜻으로 쓰인 것이 많습니다. 이 글자 貞은 지금은 여자들의 이름에 많이 쓰이는 그런 뜻이 아니고 앞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점을 치다'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貞人이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당시의 貞人은 '점을 치는 사람'이 맞습니다. 그러면 여자가 어떻게 해야 이롭다는 것일까요. 점을 친다는 것을 하늘의 이치에 따른다는 것으로 정조를 지킨다는 게 아니라 자신이 주체적으로 바른 길을 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게다가 위, 아래의 두 괘가 다 딸이잖아요.

  효사를 모두 해석을 하면 누가 내린 해석도 여섯 개를 이어서 보면 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역사를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의 결론입니다. 당시의 家라는 것은 생존의 가장 기초적인 것으로 '가인'은 외부의 침략을 막아내고 자신들의 생존을 지키는 집단입니다. 따라서 家의 공통된 가치와 이익에 무조건적으로 동의해야 하고 이견이 있으면 가차없이 쫓아 냅니다. 안에서 자신이 맡은 일을 어그러짐 없이 수행해야 하고 엄격하게 내부규칙에 따라야 합니다. 3효를 보면 규율이 너무 엄해도 고통스러워하고 너무 느슨해도 마침내는 후회하게 됩니다. 전체의 맥락을 보면 좁은 한 식구나 가족보다 집안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군산 여행

   군산을 다녀 왔습니다. 나와는 관련 없지만 아버지의 고향이어서 조금의 마음은 있는 곳입니다. 근대역사박물관에서 이런 걸 보았습니다.


  삼일운동 만세로 재판을 받은 2심 판결문입니다. 1, 2심 유죄 선고를 받고 대법원 상고를 했는데 기각되었다고 한 것입니다. 옥구 사람 학교 교원 이두열이라는 분과 동료로 보이는 두 분에 대한 판결서인데 판결에 대한 내용은 여기에 없고 다음 쪽에 있는 것 같습니다.


  상장인데 그 악명 높았던 동양척식회사에서 열심히 수탈했다고(收納이라고 표현)준 상입니다. 박상현이라는 사람이 받았습니다. 저 사람의 자손이 자료 제공을 했을까요?


  창씨개명을 한 원본 사진입니다. 創氏改名으로 일본식으로 성을 만들고 이름을 고친 것을 말합니다. 이 사람들의 본래의 성은 모르겠고 고궁古宮으로 바꾸고 그 아래에 큰 글씨는 바꾼 이름(改名) 아래의 작은 글씨는 원래의 이름(旧名 舊의 일본 한자)입니다.
  선유도를 들어가는 신시도에 초등학교가 하나 있었습니다. 





  폐교가 최근에 된 것으로 보입니다. 얼마 전 신안에서 학교 관사에 괴한이 침입한 후 학교 관사를 모두 신식으로 개조했는데 여기도 관사가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체육관 사진이 두 장 있습니다. 돈이 이렇게 썩어 나갑니다. 운동장의 쇠기둥은 배구 폴대이고 지금은 동네에서 운동기구를 설치한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 사진, 체육관을 멀리 찍은 사진을 찍은 곳에 있는 장면.

  250년 된 이팝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는 표지판이 있습니다. 앞에 엎어져 있는 세면대를 치우고 보면 두 그루의 나무 중 어느 것이 이팝나무인지 나무를 모르는 사람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이팝나무는 이삼 년 전부터 많이 심어서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겁니다. 나도 이렇게 오래 사는 이팝나무는 처음 볼 뿐 아니라 들어 본 적도 없습니다. 왼쪽이 느티, 오른쪽이 이팝입니다.

  ※ 바지락과 낚시 체험이 있다고 하지만 여기 여행은 글쎄 입니다. 여수에서 갔기 때문일까요?

   어렸을 땐 눈을 질리도록 보았지만 여기에 직장을 잡으며 눈구경이 어려워졌습니다. 눈 내리는 것도 일 년에 다섯 번도 볼까 하는데 쌓이는 건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만큼 내리는 것도 아주 이따금 있는 일입니다.



마음 다스리기

  마음을 평소에 평온하게 다스리는 건 지금까지 세상을 잘 살아 온 사람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일상이 아닌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을 때 그간 정신 수양을 얼마나 했는지가 평정의 정도와 시간을 가름합니다. 치과에서 삼십 분을 넘게 목구멍에 걸리는 침을 힘들게 삼키며 입안을 고스란히 내어 주는 것은 평정심 유지의 중단계 정도 되지 않을까요?
  사람에게 열불나는 것이 상단계일 것입니다. 상단계 중 하단계는 내게 직접 영향은 없는데 열불나는 장면을 지켜 보는 것입니다. 요새 쿠팡 보는 것 같은. 한국에서 돈을 버는데 미국기업이고, 버는 족족 미국으로 건너 가고, 직원 혹사시켜 계속 죽이고 책임은 지지 않고, 그네 나라인 강도나라 하원에서는 개인정보 유출이 자국 기업의 이익을 침탈한다고 지랄하고, 거기에 정말로 참지 못하겠는 건 그런 상황에서도 쿠팡 사용자는 여전하다는 것은 남의 일이어도 참기가 어렵습니다.
  상단계의 중단계는 사들인 기업의 주식이 동전주식이 되어 정부에서 코스탁 퇴출하겠다고 절차를 밟는 것인데 그건 내 돈을 날리는 것이지만 내 선택이 가져 오는 결과이니 막대하지만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일입니다.
  상단계의 상단계는 내가 정리한 일을 누군가가 들쑤셔 다시 지저분하게 만든 걸 뒤집어 쓰는 경우입니다. 앨범이란 건 내 삶의 역사 일부분의 백업 기록입니다. 그걸 완벽히 태워 없애고 과거의 사람을 정리하고 결혼생활과 직장을 정리했는데 당사자도 아닌 사람이 다시 끌어 내어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



  달리기를 하며 그 지랄 같은 상황이 머리에 가득 찬 순간 돌에 걸려 넘어졌고 무릎이 찢어 지고 머리를 깨지는 것을 막은 손은 엄청 부어 올랐습니다. 의사가 몇 바늘 꿰맸는지도 이야기 해 주지 않을 정도로 두 겹으로 가로로 끝에서 끝까지.
  나름 마음이 심란해지면 스스로 잘 관리해 오고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전처야 원래 교활한 사람이기에 온갖 수단을 쓸 수 있었겠지만, 동생은 나도 없앤 번호를 아직도 가지고 있고, 그 어이 없는 고민을 다 들어 주고, 그것을 내게 가감없이 옮기는 건 대체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런 걸까요.
  오전 세 시간을 운동으로 건강 만들어 왔는데 이 일로 건강이 얼마나 타격을 받을 지 걱정이 들고, 아직도 이런 사람이 내게 남아 있다는 게 아직도 내가 부족한 사람인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2026-02-07

복수

   한자로는 復讎로 씁니다. 讎는 뜻이 '원수'로 원수에만 쓰는 글자입니다. 復은 아시는 대로 '반복하다', '되돌리다'의 뜻을 가지고 있으니 '원수를 갚다'의 뜻으로 충분합니다. 영어로는 Avenge, Revenge(Vengeance)도 있지만 지금 이야기에는 상관없음)이 있는데 영어가 더 '복수'에 대한 가치 부여가 확실합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족이나 그만큼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복수를 하는 것이 사람으로서의 도리인 것으로, 그것이 '의리'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행동에 옮긴 것을 당연하고 자랑스러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인간의 본성, 인지상정인 것입니다.

  그런데 영어 표현이 더 잘 '복수'의 의미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고 본 것은 '벤지'도 '리벤지'도 '복수'라는 것입니다. 복수는 꼬리에 고리를 물고 이어진다는 뜻일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수를 하면서 다시 복수가 자신에게 되돌아오지 않게 하려고 목격자 뿐 아니라 씨앗까지 말려 버리는 이야기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왼뺨 때리면 오른뺨도 내어 주라'고 이천 년 전에도 말씀하신 것입니다. 뛰어난 통찰입니다. 단지 그의 후예들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을 정반대로 행하면서 그의 제자라고 주장하는 어이없는 거짓 주장을 하는 것, '웩!'입니다.

굴원의 어부사

   언제 철이 들면 적당한 걸까요? 공자의 나이에 대한 주장을 들어 봅시다. 지학(志學) (15세), 이립(而立) (30세), 불혹(不惑) (40세):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 지천명(知天命) (50세), 이순(耳順) (60세), 종심(從心) (70세). 지천명일까요 이순일까요. 하늘의 뜻이 무엇인 줄 알고 그에 순응할 줄 아는 것일까요 다른 사람의 말을 알아 먹을 수 있는 것까지 일까요. 알고 보니 공자는 하늘의 뜻을 아는 것보다 사람의 생각을 읽어 내는 것이 더 어렵다고 생각했네요. 아, 이건 저만의 해석입니다.

  당시 뿐 아니고 명청 대까지도 40이면 손주를 본 노인의 반열이고 50이 되면 늙은이로 자타 공인하였습니다. 이순은 살만큼 다 살았는데 추가의 삶을 사는 나이이고 그 나이가 되면 남이 하는 말을 들을 줄 알고 뜻이 달라도 충돌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보다 더 살아 일흔이 넘으면 그 땐 어떤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하늘과 인간의 뜻에 거스르지 않는 자연스러운 상태가 된다는 거라고 해석합니다.

  오십 대 중반부터 삶을 보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린 건 오십 전후반이었고 사람과 하늘의 뜻 사이에서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에 대한 태도는 전에 읽었던 동양 철학의 뜻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한 오십 중반. 공자의 기준에 상당히 부합하네요. 불혹은 아직도 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런 변화를 가장 쉽고 간결하게 말씀해 주셨던 글이 바로 굴원의 어부사였습니다.

어부사(漁父辭)

굴원

屈原旣放, 游於江潭, 行吟澤畔, 顔色樵悴, 形容枯槁. 漁父見而問之曰: 子非三閭大夫與? 何故至於斯? 屈原曰: 擧世皆濁, 我獨淸, 衆人皆醉, 我獨醒. 是以見放.

漁父曰: 聖人不凝滯於物, 而能與世推移. 世人皆濁, 何不淈其泥而揚其波? 衆人皆醉, 何不飽其糟而歠其醨? 何故深思高擧, 自令放爲? 

屈原曰: 吾聞之, 新沐者必彈冠, 新浴者必振衣. 安能以身之察察, 受物之汶汶者乎? ​寧赴湘流, 葬於江魚之腹中. 安能以皓皓之白, 而蒙世俗之塵埃乎? 

漁父莞爾而笑, 鼓枻而去 乃歌曰,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遂去, 不復與言.


굴원은 이윽고 쫓겨나 강과 호수에 노닐면서, 시를 읊으며 물가를 거니는데, 안색이 초췌하고 꼴은 바짝 야위었다. 어부가 보고 묻기를, “그대는 삼려대부가 아니시오? 무슨 까닭으로 여기에까지 이르셨소?” 라고 하니, 굴원이 말했다. “온 세상이 다 흐린데 나 홀로 맑고, 사람들이 다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있으니, 이로써 쫓겨나게 되었소.”

어부가 말했다. “성인(聖人)은 사물에 엉켜서 막혀 있지 않고 세상과 더불어 변해갈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흐리다면, 어째서 진흙탕을 휘저어 흙탕물을 일으키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다 취해 있다면, 어째서 술지게미로 배를 채우고 술찌꺼기를 마시지 않습니까? 무슨 까닭으로 깊이 생각하고 고결하게 처신하여 스스로 쫓겨나게 만드시오?”

굴원이 말했다. “내 듣건대, 머리를 새로 감은 사람은 반드시 갓을 털고, 목욕을 새로 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턴다고 하였으니, 어찌 깨끗한 몸으로써 더러운 물을 받아들일 수 있겠소? 차라리 상강(湘流)에 뛰어들어 물고기 뱃속에다 장례를 치르겠소. 어찌 하얗디 하얀 깨끗함으로써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쓸 수 있단 말이오?”

어부가 빙그레 웃고는 노를 두드리며 떠나면서 노래를 불렀다. “창랑(滄浪)의 물이 맑구나, 내 갓끈을 씻을 수 있네. 창랑의 물이 흐리구나, 내 발을 씻을 수 있네.” 마침내 떠나가니, 다시는 더불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전국시대 초나라 사람이었는데 '삼려대부'의 관직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들 계급이 공경대부이니 높은 계급은 아니나 다른 나라에서는 '태부'라고 부르는 왕족 자제들을 가르치는 관직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초나라의 회왕은 어리석어 중국을 통일하려는 야심을 가진 진秦나라에 휘둘리고 있었고 그는 초나라를 위해 힘을 썼지만 모략에 걸려 쫓겨나 여기까지 온 것이었습니다. 이 강이 시에 나오는 '상강(湘流)이라면 이 강은 지금 명칭 '우한(무한)'까지 흐르고 중류는 한수(여기에서 한강의 이름을 따옴. 漢水)를 말하는 것일 것입니다. 뒤에 나오는 '창랑'도 마찬가지의 강입니다.

- 내가 아끼는 말은 마지막 문단의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인데 이 어부사의 마지막 문단은 사마천의 사기에는 나오지 않는 것으로 후대에 덧붙인 것이라고 나무위키에서 그러네요. 맥락이 잘 맞긴 합니다. 마지막 문단에 대한 나무위키의 해석은 역겹도록 무식하지만. 

"시대가 청렴결백하면 똑같이 청렴결백으로 세상을 대하고, 시대가 부정부패를 일삼으면 똑같이 부정부패를 함께 하겠다는 어부의 노래이다."

윽!

야사에는 굴원이 그 뒤 멱라수에 몸을 던져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그의 뜻을 기리고자 단오 풍습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 시의 제목이 어부사인데 한자로 漁夫辭가 아니라 漁父辭입니다. 고기잡이 '어부'가 아닌 것입니다. 父를 쓴 것은 '어르신'을 말하는 것으로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살고 있는 은둔자라는 것을 말하니 여기저기서 잘난 체하는 사람들이 '고기잡이 어부도 아는 세상살이 요령을 모르는, 그래서 가르침을 받는'이라는 해석은 택도 없는 잘못 된 것입니다.

2026-02-04

부끄러운 줄 모르는 야만의 문명들

   지금 읽고 있는 소설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또 발견했습니다. 성명란이 고정엽과 결혼하면 '고부인'이라 불릴까요 아니면 '성부인'이라 불릴까요. 그 생각을 하다 보니 참으로 한반도는 그 점 하나는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부인이라 부릅니다.

  먼저 잘난 체 하는 서양. 스칼렛 요한슨은 세 번 결혼했습니다. 라이언 레이놀즈, 로맹 도리악, 콜린 조스트. 자녀 둘. 로즈 도로시 도리악, 장남 코스모 조스트. 이 아이들은 당연히 아버지의 성을 따르니 저런 이름을 갖게 된 것인데 스칼렛 요한슨은 애초의 성 '요한슨' 다음에 스칼렛 레이놀즈가 되었다가 스칼렛 도리악이 되었다가 스칼렛 조스트라 불렷어야 하겠지요. 유명인이어서 계속 스칼렛 요한슨으로 불렸을 거지만.

  그래서 가까이 있는 일본을 확인해 보니 남성의 성을 따르는 것은 아닌데 부부가 동성이어야 한답니다. 대부분 남자의 성을 따른답니다. 그러니 재혼하면 법저인 이름이 바뀐다니까요. 왜 저런 어이없는 옛날 관습에 따른 법을 유지하고 있을까요?

의식주와 경자유전

   의식주는 인간생활의 기본요소이고 경자유전은 국가경제의 기본경영 정책입니다. 고대국가들 어떤 시기에서도 권력을 가진 자들이 온 나라의 땅을 야금야금 먹어 들어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광작화로 인한 백성들의 생활은 궁핍이라고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살았고 그나마 나은 왕이 나오면 땅을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소유하게 하려고 했고 소작농의 경우 세금을 법에 규정한 10%이내로 적용하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그런 왕의 뜻이 관철되는 시기는 동서양 또한 마찬가지로 한 세대 유지도 하지 못했습니다. 의식이 족하면 예절을 안다고 관중이 말했지만 의식이 족한 놈들은 족하지 않은 자들의 먹는 것 뿐 아니라 피까지 빨아 먹었습니다.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는 놈들은 사형을 시켜야 한다'는 말이 아주 보편적으로 나오지만 '의식주'의 '주住'는 어느 시절부터 축재의 중요한 수단이 되어 버렸습니다. 나는 내내 집이 '거주의 공간' 개념이어야 하며 '투자'나 '재산 증식'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드디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겠다고 하는 대통령이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훌륭한 척 했던 그 어떤 놈도 폼만 잡고 자신을 둘러싼 부패한 신하들과 의원들의 힘에 의해 꽁지를 사렸습니다. 이 대통령은 아예 스스로 여러 번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 유예는 연장하지 않겠다고 후퇴할 수 있는 다리를 끊었으니 기대해 봄 직합니다. 처음으로 존경할 만한 지도자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정책 하나만으로도 끝까지 관철한다면 그는 천국에 갈 것이고 그에게 기회가 없다면 제 기회를 대신 주겠습니다. 

2026-02-02

불초

   不肖인데 肖의 뜻은 '닮다'로서 닮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자식이 아버지를 닮지 않았다는 뜻으로 '불초소생이~'로 자식이 아버지에게 하는 말입니다. 맹자가 중국 역사의 요임금이 자신의 자식이 아닌 순임금에게 선양하고 순임금이 자식이 아닌 치수에 공이 있는 우임금에게 왕위를 물려 준 것을 말하는 글에 이 표현이 나왔답니다. 원문은 

丹朱之不肖 舜之子亦不肖 舜之相堯 禹之相舜也 歷年多 施澤於民久

인데 맹자는 전국시대의 사람으로 작은 나라 추나라에서 태어나 노나라로 가서 공자의 손자인 자사에게 배우고 천하를 유람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부분의 역사적인 사실은 죽서기년이 발견이 되면서 선양이 아니라 선양을 요구받아 물려준, 그러니까 빼앗긴 모양새였다는 기록도 나왔으니 어느 게 맞는지는 모르고 단지 공자의 멋있게 보는 해석이 더 세를 얻고 있습니다. 공자는 역사를 왜곡했다는 증거가 꽤 있습니다.

단사철권

   어렸을 때 소공녀, 소공자부터 몬테크리스토 등 서양 문학을 읽으면서 공작이니 백작이니 귀족 칭호를 접하고 공후백자남을 외웠지 동양에서 있었던 것은 몰랐습니다. 최근에 알게 된 게 서양의 군대 계급 칭호처럼 일관된 체계의 이름으로 서양은 붙이지 않았고 공후백자남은 중국에서 썼던 것이고 용케 서양도 다섯 등급이어서 일대일 대응을 시킨 것이었는데 중국에서는 공작이니 백작이니로 부르지 않았고 서양소설 번역 때 그렇게 쓰다 보니 작위의 이름이 서양에서만 그런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전에도 이야기했던 건데 이런 작위는 분봉을 했던 나라에서 썼던 작위의 명칭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진나라처럼 중앙집권적 군현제를 통치체제로 한 경우는 귀족 작위가 없습니다. 분봉을 할 때 그러니까 주나라 시대 때 주나라 우두머리가 '왕王'이었고 왕이 분봉한 왕족이 '공公'이었습니다. 주문왕(희창)의 아들이자 2대 왕인 주무왕(희발)의 동생이 주공(희단)에 봉(노나라)해지고 낚시하던 이는 강태공은 제나라에 봉해집니다. 물론 늙어서 실은 그들의 장자에서 봉했습니다. 이 때 공후백자남의 작위가 만들어 졌고 각 봉국의 우두머리 '公'의 아래 최고의 벼슬에게 '경卿'이라 하는 두 번째 작위 '후侯'를 주었습니다.

  작위의 체제가 제대로 잡힌 건 한나라입니다. 이 때는 나라 전체의 우두머리 유방이 '황제(제)'였고 한신은 제왕, 초왕에 봉해졌다가 나중에 회음후로 강등된 뒤 역모로 몰려 죽음을 당합니다.

  단서철권은 단서철권(丹書鐵券)으로 맨처음 한나라 때 붉은 글씨가 쇠기와에 씌어 있고 두 조각으로 만들어 하나는 작위를 받은 자에게 주고 다른 하나는 종묘에 두었답니다.

나무위키

  처음에 철기와에 '귀함'을 뜻하는 주사朱沙로 글을 썼는데 붉은 색의 글씨도 검게 변하고 철은 산화된 뒤 검게 변하여 글씨를 알 수 없게 되어 위진남북조의 양나라에서 글씨를 은으로 썼다가 수나라 때 금으로 써서 '금사철권'으로도 부르게 되었답니다. 
  하사받은 작위는 세습이 되었고 봉토를 받은 권리를 새긴 것이었으니 가문의 중요한 보물이었고 사형을 면해 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검찰 개혁

   어제 국무회의 그의 발언을 듣고 그 때야 보이지 않았던 이 일의 내막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급하게 때려 잡으러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더니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고 지금은 혁명 아닌 개혁을 해야 한다고 에둘러 말을 하다 점점 상세화하던 그의 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