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소공녀, 소공자부터 몬테크리스토 등 서양 문학을 읽으면서 공작이니 백작이니 귀족 칭호를 접하고 공후백자남을 외웠지 동양에서 있었던 것은 몰랐습니다. 최근에 알게 된 게 서양의 군대 계급 칭호처럼 일관된 체계의 이름으로 서양은 붙이지 않았고 공후백자남은 중국에서 썼던 것이고 용케 서양도 다섯 등급이어서 일대일 대응을 시킨 것이었는데 중국에서는 공작이니 백작이니로 부르지 않았고 서양소설 번역 때 그렇게 쓰다 보니 작위의 이름이 서양에서만 그런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전에도 이야기했던 건데 이런 작위는 분봉을 했던 나라에서 썼던 작위의 명칭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진나라처럼 중앙집권적 군현제를 통치체제로 한 경우는 귀족 작위가 없습니다. 분봉을 할 때 그러니까 주나라 시대 때 주나라 우두머리가 '왕王'이었고 왕이 분봉한 왕족이 '공公'이었습니다. 주문왕(희창)의 아들이자 2대 왕인 주무왕(희발)의 동생이 주공(희단)에 봉(노나라)해지고 낚시하던 이는 강태공은 제나라에 봉해집니다. 물론 늙어서 실은 그들의 장자에서 봉했습니다. 이 때 공후백자남의 작위가 만들어 졌고 각 봉국의 우두머리 '公'의 아래 최고의 벼슬에게 '경卿'이라 하는 두 번째 작위 '후侯'를 주었습니다.
작위의 체제가 제대로 잡힌 건 한나라입니다. 이 때는 나라 전체의 우두머리 유방이 '황제(제)'였고 한신은 제왕, 초왕에 봉해졌다가 나중에 회음후로 강등된 뒤 역모로 몰려 죽음을 당합니다.
단서철권은 단서철권(丹書鐵券)으로 맨처음 한나라 때 붉은 글씨가 쇠기와에 씌어 있고 두 조각으로 만들어 하나는 작위를 받은 자에게 주고 다른 하나는 종묘에 두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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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철기와에 '귀함'을 뜻하는 주사朱沙로 글을 썼는데 붉은 색의 글씨도 검게 변하고 철은 산화된 뒤 검게 변하여 글씨를 알 수 없게 되어 위진남북조의 양나라에서 글씨를 은으로 썼다가 수나라 때 금으로 써서 '금사철권'으로도 부르게 되었답니다.
하사받은 작위는 세습이 되었고 봉토를 받은 권리를 새긴 것이었으니 가문의 중요한 보물이었고 사형을 면해 주기도 했다고 합니다.